문수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342번지에 자리잡은 절로 문수산의 이름을 딴 절이다. 이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는 주로 영축산이라 불려오던 산이다. 천축국왕사성 부근에 있는 영축산의 이름이 불교를 따라 우리나라로 이동하여 온 것으로서 천축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이며, 신선들이 살았고 독수리가 많이 있으므로 영축산 또는 축두, 축봉, 축대라고도 하였다는 것이다.
축령들이 산에 있으므로 이름하였고 혹은 산모양이 수리머리와 비슷하다는데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조에 와서는 문수산이라 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렇게 나타난다. 또 이 산을 일명 청량산이라고 하였는데 산 아래에 있는 청량면은 청량산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이다. 이 산을 문수산이라고 한 것은 화엄경 제 10법 운지로서 보살들이 살던 곳이어서 문수보살이 응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삼국유사 권 5 연회도명 문수점에서 문수대성과 변재천녀가 응현하여, 무거설화에서도 문수보살이 나타난다.
무거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경순왕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장래를 영취산의 문수대성의 계시를 받아 결정키로 결심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하곡현의 영취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먼저 태화에 이르러 참배하고 또 길을 나섰는데 중도 에서 길가에 한 동자승이 나타나더니 대왕께서 오실 줄 알고 산으로 인도하여 모시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크게 만족하여 길을 따랐다. 그러나 삼호 앞에서 태화강을 건너자 얼마가지 아니하여 동자승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왕은 직감에 이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느끼고 하늘이 이미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여 크게 탄식하며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이래서 왕은 발길을 돌려 월성(지금의 경주)에 환궁하여 사방의 땅이 다 타인의 소유로 돌아가고 나라의 힘은 다 쇠퇴하여 다시 일으키지 못함을 통탄한 나머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꾀하였다. 이 탄식한 자리를 ‘헐수정’이라 하였으며 동자승이 자취를 감춘 속을 무거라 하였다.”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이 곳에 절을 세워 문수사라했다고 한다. 이 문수사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범어사의 말사가 되면서 사명을 문수암이라 고쳤다가 1989년에 중건하여 다시 문수사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