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유래

언양장

1919년에발간된 옛 언양읍지에 보면 읍내장(邑內場)은 내시(內市) 매월 3차 7일과 외시(外市) 매월 3차 2일, 그리고 신시(新市) 매월 6차 4, 9일로기록되어있다. 1955년 10월 이전까지만 하여도 언양장은 음력으로행하여졋으며, 2도 8군장의 하나로 경상남북도의경주, 밀양, 청도, 울산, 동래, 양산, 영천 등의 상인들이 찾아들었던 큰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터도이동되어 달라졌고 장날도양력으로매월 6차 5일 간격으로 2일과 7일날로 정하여 5일장이 서고있다.

옛 내시(內市)의 장터

옛 내시(內市)의 장터

내시(內市)는 안장으로현재언양초등학교정문에서남쪽으로 동부리 187번지 일대의 상북면에서 내려오는 교차 사거리까지와 거기에서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동부리 157번지일대의아랫사거리까지의 노상과 남부리 273-2번지와 274-3번지 일대의 골목장터로서음력으로 매월 3차에 걸쳐 7일날로 장이 섰다.
주 상픔으로는 ,고헌산 고사리와 간월산 반달비, 곤달비와신불산도라지, 더덕, 가지산 버섯종류 그리고 인근 야산의 산나물이며 마늘 , 채소 등이도로변에 연이어 내다 팔았고, 특히남부리 273-2번지와 274-3번지 일대의 어물전은 당시 제일의 장터였다. 그리고 물문걸 곧남부리 308번지와 서부리 74번지일대의목물전도 유명했다. 안장의 주 장터엿던 어물전 자리는 지금 구 매일시장과 안나유치원 자리로되어있다.

옛 외시(外市)의 장터

옛 외시(外市)의 장터

외시(外市)는 배끄장으로서 남부리 340-1번지가 중심이 되어동부리 157번지의 아랫사거리에서 남쪽으로 남천제방까지 뻗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매월 음력으로 3차에 걸쳐 2일장이 섰다.
닭전은 남부리 317번지 현재 언양보건소 일대의 골목장에섰고 솥전은 닭전과 마주보고 섰으며, 나무전은 남부리 124번지 일대의 동편쪽에 있었으며, 1950년 이전까지만 하여도도살장이 곁들어있엇다. 옹기전은 나무전 끝자락에위치하여오기를 항상 제자리에 두고 장사하였으나, 아무도 가져가는 사람없고 해치는 사람도 없었다.만약에 옹기전을 해치면평생재수없다는야사적인 전설이내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부리 청년회관을 비롯 각종 건물이 들어서서 점포를 이루고 있을 뿐 엣 2일 장터는 찾아볼 수 없다.

옛 신시(新市)의 장터

옛 신시(新市)의 장터

구읍지에서 신시(新市)라 함은 새 시장을 말함이다. 옛 새시장터는남부리 124-2번지일대로오늘날에언양종합 매일시장터가주로 하고있는 장터로 매월 음력으로 6차에 걸쳐 4, 9일날 장이 섰던 터다.
그 후 1960년도 후만 새 시장터는 본래 하천부지와미나리꽝으로 되어 있었던 터였는데 당시 언양 면민들은 부역으로미나리꽝을 매축하였다. 장정들은 지개에다 남천내 돌과자갈을저다 날랐고 부녀자들은 세숫대야에다 혹은 민머리로 남천 강변돌과 자갈을 이고 날랏다. 그때 언양면사무소에서는돌덩이수나 짐바리 수를 각 호당마다 의무적으로정하여어린이들까지 동원되어있었다.
그 당시 새 시장에는 옛 안정터의 어물전이 옮겨져 여기에서 형성되어 흥행하였으니 파장쯤이면 고기장수들의 장타령이 한껏 흥겨웠다. “울갔다울산장, 이장 저장 양산장, 남창 남창 남창장, 골목 골목 언양장, 자-뜨러미요 뜨리미”하며 한 풍류를 외치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터에 언양종합매일시장과 아파트가 들어섰고 또점포가 딸린 건물들이 들어서고말았다.

오늘날의 언양 5일장

1955년 10월 부터는 남부리 336-87번지 , 338-72번지, 38-20번지, 338-23번지 일대에 옛 새 시장터를 끼고 양력으로 매월 6차에 걸쳐 2일 7일장으로 5일마다 장이서고있다.
우시장(牛市場)터는 1979년어음리 500-15번지 일대로옮겨져가고 각종 농산물과 옹기그릇, 어물, 포목, 의류,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엣 나무전, 솥전은 볼수가 없다.
그러나 쌀전만은 엣날처럼 시계전(쌀전) 혹은 다부전거리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아니라 지금은 남부리 129-1번지 동편쪽 고상에서 126-1번지 동편쪽 노상곧 시외버스 터미널 뒷문쪽에 모여서 장날마다 성시를 이루고 있다.